장영실의 놀라운 발명과 혁신의 여정을 알아보세요. 노비의 신분에서 출발해 조선의 과학 발전에 큰 기여를 한 그의 이야기를 통해, 물시계 자격루, 천문기구 혼천의, 세계 최초의 측우기 등 장영실의 주요 발명품과 업적을 상세히 소개합니다.

 

조선의 천재 과학자 장영실: 노비에서 왕의 발명가로

 

장영실이 살아온 길

1. 노비로 태어난 재주꾼

1390년쯤 경상도 동래현에서 기생의 아들로 태어나다.
1392년 3세쯤 조선이 세워지다.
1399년쯤 10세쯤 관청의 종으로 들어가다.
1403년 14세쯤 활자를 만드는 주자소가 세워지다.

 

2. 뛰어난 솜씨를 인정받다

1405년 16세쯤 궁궐로 들어가다.
1418년 29세쯤 세종 대왕이 임금이 되다.
1420년 31세쯤 공조 참판 이천이 경자자를 만들다.


1421년 32세쯤 중국에 가서 1년 남짓 머물며 앞선 과학 기술을 배워 오다.
1423년 34세쯤 상의원 별좌라는 벼슬을 받다.

 

3. 물시계 자격루를 만들다

1432년 43세쯤 간의를 만들다.

간의
간의는 천체의 위치를 측정하는 기구로 각도기와 비슷한 구조를 가졌으며, 혼천의를 간소화한 것이다.

 

1434년 45세쯤 혼천의를 완성하고, 호군 벼슬을 받다. 갑인자와 물시계 자격루를 만들다.

천체의 운행과 그 위치를 측정하던 관측기로 중국에서 사용하던 혼천의는 천체운행을 관측하는 것이 목적이었고, 장영실이 제작한 혼천의는 정교한 동력장치를 이용해 천체의 운행을 재현하면서 그와 동시에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이다.

 

갑인자
갑인년에 왕명으로 주조된 활자이다. 이천·김돈·김빈·장영실·이세형·정척·이순지 등이 두 달 동안에 20여 만의 큰 중자인 대자와 소자를 만들었다. 활자의 모양이 바르고 글자의 크기가 고르게 조립되었으며, 자판의 빈틈을 납을 사용하지 않고 대나무를 이용하였으므로 글자가 선명하고 아름답다. 하루에 활자를 찍어 내는 양이 40여 장에 달하여 경자자보다 배 이상의 생산력을 가질 수 있었다.
자격루
중국과 아라비아의 물시계를 비교, 연구하여 만들어진 새로운 형태의 물시계로 시간에 따라 종과 징, 북이 저절로 울리게 만들었고, 인형이 시간을 알려주는 표를 들고 나타나게 되어있는 정교한 자동시보장치 물시계이다.


1437년 48세쯤 앙부일구, 현주일구 등을 만들다.

양부일구
양부일구는 하늘을 바라보는 가마솥 해시계라는 뜻으로, 모양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장영실, 이천, 김조 등이 만들었던 해시계로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있는 유일하고 독특한 발명품이다. 햇빛에 의해 그림자가 생겼을 때 그림자의 위치로 시간을 측정하는 장치로써 시각은 12지신으로 표시하여 백성들이 쉽게 시간을 읽을 수 있었다.
현주일구
장영실․정초․김빈․이천․김돈 등이 제작한 휴대용 해시계로 시반 양면에 시각 눈금을 새겨 놓고 시반에 맺힌 실 그림자로 시간을 측정하였다. 시반의 윗면은 봄에서 가을까지, 아랫면은 가을에서 다음 해 봄까지 사용하였다.


1438년 49세쯤 물시계 옥루를 만들다. 채방 별감이 되어 광물 캐내는 일을 하다.

옥루
자동물시계인 옥루를 완성하였고, 세종은 경복궁 침전 곁에 흠경각을 지어 그 안에 설치하도록 했다. 옥루는 지금 남아 있지 않아 아쉽게도 그 형태를 완벽히 알 수는 없고, 전해지는 기록으로 추측해 볼 뿐이었으나, 2019년에 복원되었다. 옥루는 자격루와 같은 물시계 장치뿐 만 아니라 태양의 운행 등 천체의 변화를 보여주는 장치까지 있는 천문시계이다. 또한 동지, 춘분, 하지, 추분까지 알려주기도 했다.

4. 세계 최초로 측우기를 만들다

1441년 52세쯤 세계 최초로 측우기를 발명하고, 수표를 만들다.

측우기
강우량을 측정하기 위하여 쓰인 기구로 금속제 원통형 그릇에 빗물을 받아 표준화된 눈금의 자로 그 깊이를 측정했으며, 같은 규격의 기구와 자를 각 도의 군현에 설치하여 전국적으로 우량 관측 및 보고 체계를 갖추었다.
수표
하천의 수위 변화를 측정하는 수표는 받침돌과 나무 기둥은 쇠갈고리[鐵鉤]로 묶어 고정시키고, 나무 기둥에 척·촌·분의 수를 새겨 호조의 낭청으로 하여금 하천의 수위를 측정하여 보고하도록 하였다.

1442년 53세쯤 세종 대왕의 가마가 부서져 의금부에 갇히다. 그 뒤, 궁궐에서 쫓겨나다.

 

장영실의 발명품

년도 발명품
1432년 간의 (천문관측기구)
1433년 혼천의 (천문관측기구)
1434년 자격루 (물시계) , 갑인자 (동활자), 앙부일구 (해시계)
1437년 현주·천평·정남일구 (해시계), 규표 (해그림자 측정기), 일성정시의 (낮, 밤 시간측정기)
1438년 옥루 (천상 자동물시계)
1441년 수표 (하천수위 측량기구)
1442년 측우기 (강우량 측정기)

장영실에 대한 더 많은 정보는 장영실과학관을 통해서 확인이 가능합니다.

 

아산 장영실과학관! 

 

초등학생이 알아야 하는 용어 설명

가. 간의대와 서운관

천문 관측 기구인 '간의'를 설치했던 관측대로 세종 대왕 때 경복궁 경회루 북쪽에 이 간의대를 크게 짓고, 매일 밤마다 서운관의 관리들이 이곳에서 간의로 하늘을 관측했다. 서운관은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천문, 지리, 기상 관측, 시간을 담당했던 관청으로, 나중에 관상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장영실도 서운관에서 일했다. 세종 대왕 때에는 경복궁과, 지금의 서울 계동인 북부 광화방에 간의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나. 구텐베르크(? ~ 1468)

독일 사람으로, 1440년 무렵에 금속 활자를 만들었다. 그 때 우리나라에는 이미 1234년부터 만들기 시작한 금속 활자가 여러 가지 있었고, 장영실의 갑인자도 만들어진 뒤였다. 구텐베르크는 주석과 납을 섞어서 활자를 만들어 달력이나 성경책 등을 인쇄했는데, 그 뒤 유럽 여러 나라로 구텐베르크의 금속 활자 기술이 전해졌다.

 

다. 위도

적도를 0도로 하고 남북을 각각 90도로 나누어, 지구 표면을 재는 좌표이다. 북쪽으로 잰 것을 북위, 남쪽으로 잰 것을 남위라고 한다. 장영실은 간의로 북극성의 위치를 재어 당시 한성이 북위 38도임을 밝혔는데, 이것은 오늘날 서울이 북위 37.5 도인 것과 견줄 때 아주 정확한 측정이었다.

 

라. 이천(1376~1451)

조선의 과학자이며 무신으로 세종 대왕 때 왜구의 침입을 막는 데 큰 공을 세워 충청도 병마 도절제사가 되었는데, 이때 군함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 과학자로서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세종 대왕의 명을 받아 청동 활자인 경자자를 만들어 냈
고, 그뒤 장영실과 합께 갑인자를 만들어 냈다. 장영실이 간의와 앙부일구, 현주일구, 혼천의 등을 만들 때에도 함께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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