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학자 율곡 이이의 삶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그의 학문적 업적, 정치적 통찰, 그리고 사회에 끼친 영향까지 깊이 있게 살펴보고, 그의 철학과 가치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율곡 이이: 뛰어난 학문과 탁월한 리더십으로 나라를 이끈 위대한 유학자

 

조선시대 대표적인 유학자 였던 율곡 이이는 오천 원 지폐에 초상화가 새겨있으며, 그의 어머니 신사임당은 오만 원 권에 새겨져 있습니다. 무려 9번의 장원급제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운 '구도장원'으로, 조선시대 가장 많은 상소를 올린 이이는 외적의 침량을 대비할 것을 미리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그가 살아오면서 남긴 업적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율곡 이이가 태어난 오죽헌

 

율곡 이이가 살아온 길

뛰어난 글솜씨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다

1536년 12월 26일, 강원도 강릉 오죽헌에서 태어나다
1541년 6세 어머니를 따라 한성으로 올라오다
1548년 13세 소과에 장원으로 급제하다
1551년 16세 어머니 사임당 신씨가 세상을 떠나다.
1554년 19세 금강산의 마하연에서 1년 남짓 불교를 공부하다.

 

오죽헌은 연산군 때 대사헌과 형조참판을 지낸 수재 최응현의 옛집으로 별당에 해당하는 건물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민가 건축물의 하나로 오죽헌 몽룡실에서 율곡 이이가 태어남으로 해서 더욱 유서 깊은 곳이 되었습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일자형 평면집으로 주거건축에서는 드물게 이익공식(二翼工式)을 취하고 있어 주심포와 익공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주요한 건물로 1963년 보물 제165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오죽헌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는 오죽헌 시립박물관을 통해 확인이 가능합니다.

 

오죽헌 시립박물관! 

 

학문에힘쓰다

1557년 22세 성주 목사 노경린의 딸과 결혼하다.
1558년 23세 퇴계 이황을 찾아가 학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별시에 응시하여 '천도책'이라는 글을 써서 장원으로 급제하다.
1561년 26세 아버지 이원수가 세상을 떠나다.
1564년 29세 대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벼슬길에 오르다.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다

1567년 32세 명종 임금의 뒤를 이어 선조 임금이 임금의 자리에 오르다.
1568년 33세 천추사의 서장관이 되어 명나라를 다녀오다.
1569년 34세 <동호문답>을 써서 선조 임금에게 올리다.
1574년 39세 황해도 관찰사가 되어 백성들을 다스리다.

 

앞날을 내다보고 '10만 양병설'을 주장하다

1576년 41세 벼슬에서 물러나 황해도 해주의 석담으로 가다.
1577년 42세 <격몽요결>을 쓰다.
1578년 43세 은병 정사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다.
1582년 47세 병조 판서가 되다.
1583년 48세 외적의 침략에 대비하여 '10만 양병설'을 주장하다.
1584년 49세 1월 15일, 세상을 떠나다.

 

파주의 자운서원에는 이이의 영정이 있고, 묘정비와 신도비를 통해 율곡의 일대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율곡 이이와 신사임담의 평범한 가족묘를 볼 수 있습니다. 

 

파주 이이 유적 알아보기! 

 

율곡 이이가 존경받는 이유

조선 격동의 시대 혼란스러운 시기에 뛰어난 학문과 탁월한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한 이이는 임진왜란 당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힘쓴 모습은 우리에게 귀감이 됩니다. 성리학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철학 체계를 구축하여 많은 학문 연구의 자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특히나 벼슬과 명예보다는 백성과 나라를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친 위대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생을 검소하게 살았습니다. 그가 지은 '자경문'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재산과 명예에 마음을 두지 말자.


'자경문'에 쓴 대로 실천하며 살았던 이이는 높은 벼슬을 지내고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 낸 사람이지만 죽으면서 남긴 재산은 오직 부시 하나뿐이었습니다.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학식이 뛰어난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배운 대로 실천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백성을 위해 베풀고 나라를 위해 쏟아부은 율곡 이이의 거룩한 삶은, 한창 배울 나이에 있는 우리 어린이들에게 공부의 참뜻을 가르쳐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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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이 알아야 할 용어 해설

격몽요결

이이가 황해도 해주의 석담에서 제자들을 가르칠 때 지은 책. 학문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뜻을 세우는 방법, 부모에게 효도하고 남을 접대하는 방법 등을 가르치기 위해 지은 책이다.

 

과거시험

고려와 조선 시대에 관리를 뽑기 위해 나라에서 치른 시험. 958년, 고려 광종 때 처음 시행되었다. 조선 시대의 과거에는 소과, 문과, 무과, 잡과가 있었고, 보통 3년에 한 번씩 치렸다. 소과 시험에 합격한 사람을 진사라고 불렀는데, 진사가 된 사람에게는 문과(대과) 시험을 치를 수 있는 자격을 주었다. 문과 시험에 합격하면 벼슬길에 오를 수 있었다

 

동호문답

1569년, 이이가 나라를 바르게 다스리는 방법에 대하여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쓴 책. 이이는 이 책을 지어 선조 임금에게 바쳤다. 옛날 중국의 임금들을 예로 들어, 나라를 어떻게 다스리는 것이 임금의 도리인가를 설명한 책이다.


이륜행실도

1518년, 중종 임금의 명령으로 조신이 지은 책. 형제 사이의 우애와, 노인과 젊은이 사이의 예절, 친구 사이의 의리 등을 백성들에게 널리 가르치기 위해 그림을 곁들여 지은 책이다.


항약법

조선 시대에 만든 마을의 자치 규약. 좋은 일은 서로 권하고 나쁜 일은 서로 고치게 하며 서로 돕는 것을 목적으로 만든 규약이다. 향약의 시초는 중국의 여씨 향약이며,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것은 고려 말기로 여겨진다. 그러나 실제로 향약이 시행된 것은 조선 중기 이후부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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