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헌 윤봉길 의사: 우리 민족을 위해 헌신한 영웅의 이야기
2024. 4. 3. 11:39
매헌 윤봉길 의사의 용감한 행적과 불굴의 의지를 소개합니다. 그의 민족 의식과 투쟁 정신은 우리에게 큰 영감을 줍니다. 그의 삶과 헌신을 통해 우리의 역사와 자랑스러운 이야기를 안내하겠습니다.
매헌 윤봉길 의사: 우리 민족을 위해 헌신한 영웅의 이야기
목숨을 바쳐 나라에 헌신한 청년 윤봉길 의사의 이야기를 e-book으로 지금 바로 만나보세요.
1. 민족 의식에 눈뜨다
1908년 6월 21일,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서 태어나다.
1910년 3세 우리나라를 일본에 완전히 빼앗기다.
1818년 11세 덕산 공립 보통 학교에 들어가다.
1919년 12세 3.1 운동이 일어나자, 일본의 식민지 교육에 반발하여 학교를 그만두다.
1920년 13세 김좌진 장군이 청산리 대첩을 거두다.
1921년 14세 오치 서숙에서 성주록에게 배우다.
- 청산리 전투 : 김좌진이 이끈 독립군이 1920년 10월 21일부터 26일까지 청산리 계곡에서 일본군과 벌인 전투이다. 김좌진은 청산리 계곡의 지형을 이용한 기습 작전을 펼쳐 일본군 수천 명을 죽이는 큰 승리를 거두었다. 독립군이 벌인 싸움에서 가장 큰 승리였기 때문에 '청산리 대첩'이라고 부른다.
윤봉길 의사의 더 자세한 내용은 기념관에서 확인가능합니다.
2. 농민 계몽 운동에 힘쓰다
1926년 19세 농민 계몽을 위해 야학, 독서회 운동을 시작하다.
1927년 20세 <농민 독본>을 쓰다.
1929년 22세 월진회를 만들어 회장이 되다. 광주 학생 운동이 일어나다.
- 광주 학생 운동 : 1929년 11월 3일 광주에서 일어나, 전국으로 번진 학생들의 시위 운동으로 3.1 운동 이후 일어난 가장 규모가 가장 큰 항일 운동이다. 행방 후에 1953년 광주 학생 운동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 운동이 일어난 11월 3일 '학생의 날'로 정했다.
3. 중국으로 가다
1930년 23세 독립 운동을 하기 위해 만주로 떠나다.
1931년 24세 상하이에 도착하다. 김구 선생을 만나다.
4. 민족의 기상을 떨치다
1932년 25세
- 1월 8일, 이봉창이 일본왕에게 폭탄을 던졌으나 실패하다.
- 4월, 한인 애국단에 들어가다.
- 4월 29일, 훙커우 공원에서 폭탄을 던져 일본군 대장 시라카와를 비롯하여 많은 일본 사람들을 죽이고 다치게 하다.
- 5월 25일, 일본 군법 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다.
- 12월 19일, 일본 카나자와에서 사형을 당하다.
한국 위인들의 생애와 업적을 더 확인해 보세요.
- 한인 애국단 : 중국 상하이에서 김구가 만든 독입 운동 단체로 높은 자리에 있는 일본의 군인과 관리들을 암살할 목적으로 만들었다. 애국단 단원 이봉창과 윤봉길의 활약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 의열단 : 1919년 만주에서 김원봉이 만든 독립운동 단체로 일본 관리를 암살하거나 일본 관청을 파괴하는 방법으로 독립운동을 했다. 의열단이 일으킨 중요한 사건으로 부산 경찰서, 밀양 경찰서, 총독부, 동양 척식 주식회사 폭파 사건들이 있다.
- 동양 척식 주식 회사 : 우리나라의 토지를 빼앗기 위해 1908년 우리나라에 세운 일본 회사로 수많은 우리나라 농민들이 땋을 동양 척식 주식회사에 빼앗겼다. 1926년, 의열단 단원인 나석주 의사가 폭탄을 던져 우리 민족의 분노를 나타내고 일본 사람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윤봉길 의사가 태어나고 자란 예산에서는 매년 윤봉길 전국 마라톤대회를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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