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준의 동학 농민 운동에 대해 소개합니다. 특별히 전봉준이 어린 시절부터, 동학에 입문해 농민군을 이끌고 조선 후기의 부패와 외세에 맞서 싸운 여정, 김개남과 손화중 등 동학 지도자들과 함께한 전투, 그리고 집강소를 통한 자치 활동을 설명합니다. 전봉준과 동학 농민군의 희생과 역사에 남긴 의미를 조명합니다.

 

조선 후기의 민중 저항 운동, 전봉준과 동학 농민군의 이야기

 

1. 전봉준이 살아온 길

큰 뜻을 세우다

  • 1855년 전라 북도 고창군 고창읍 죽림리 당촌 마을에서 태어난다.
  • 1866년 12세쯤 아버지에게 어지러운 나라 사정을 듣고, 못된 벼슬아치들을 물어 내겠다는 뜻을 세운다.
  • 1874년 20세쯤 전라도 일대를 돌며 백성들의 생활을 살피다.

동학에 들어가다

  • 1890년 36세 동학에 들어가다.
  • 1892년 38세 고부 지방의 동학 접주가 되다. 조병갑이 고부 군수로 부임하여 횡포를 부리다. 
  • 1893년 39세 조병갑의 만행으로 아버지를 잃다. 조병갑의 횡포에 항의하다 감옥에 갇히다.

농민군을 일으키다

  • 1894년 40세 2월 15일, 농민들을 이끌고 고부 관아로 쳐들어가다.
  • 4월 말, 농민군을 일으키다.
  • 5월 1일, 전주성을 점령하다.
  • 6월 8일, 청나라 군대가 들어오다.
  • 6월 9일, 일본 군대가 들어오다.
  • 6월 10일, 27개조 요구 사항을 내걸고 관군과 화약을 맺다.
  • 7월 25일, 청일 전쟁이 일어나다.
  • 10월 초, 일본군을 몰아 내려고 다시 농민군을 일으키다.
  • 12월 8일, 우금치에서 관군과 일본군에게 크게 지다.

뜻을 못 이룬 채 세상을 떠나다

  • 1894년 40세 12월 28일, 옛 부하 김경천의 밀고로 관군에게 붙잡히다.
  • 1895년 41세 4월 23일, 서울 서대문 형장에서 교수형을 당하다.

 

압송되는 전봉준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 동학 농민 운동의 배경과 역사적 의의

가. 동학 농민 운동의 배경

동학 농민 운동은 조선 후기 사회적, 경제적 혼란 속에서 발생했습니다. 당시 농민들은 지배 계층의 착취와 외세의 간섭에 큰 고통을 겪고 있었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동학의 평등 사상과 민중의 권리 주장에 힘을 얻어 전봉준을 비롯한 많은 지도자들이 농민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나. 동학 농민 운동의 목표와 요구사항

동학 농민 운동의 주요 목표는 부정부패한 관리의 처벌, 백성의 고통을 줄이기 위한 개혁, 그리고 외세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주적 국가 건설이었습니다. 전주 화약 당시 제시된 27개조 요구 사항에는 이러한 요구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관리의 부정 방지, 조세 제도 개선, 그리고 농민 생활 안정 등이 포함되었습니다.

다. 전봉준과 동학 농민군의 역사적 의의

전봉준과 동학 농민군은 당시 사회적 억압에 저항하며 민중의 권리를 위해 싸운 대표적인 인물들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들의 활동은 이후의 의병 운동과 독립 운동에까지 영향을 미쳤으며, 한국 역사에서 중요한 민중 저항 운동의 시초로 여겨집니다. 비록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끝났으나, 이들의 희생과 정신은 이후 독립과 평등을 위한 운동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동학에 대해서 더 많은 자료를 아래 링크를 참고하세요.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방문하기! 

 

3. 초등 학생을 위한 용어 풀이

김개남 (1853~1895)

동학 농민군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1890년쯤 동학에 들어가, 1891년에 전라도 태인의 접주가 되었다. 1894년, 전봉준, 손화중 등과 함께 동학 농민군을 일으켜 활약하다가, 전주 화약 이후 남원을 중심으로 한 전라도 서남부 지역에서 집강소를 이끌었다. 그 해 11월, 1만여 명의 농민군을 이끌고 서울로 진격하다가 청주에서 일본군에게 크게 졌다. 12월 27일, 태인에서 붙잡혀, 이듬해 1월8일, 전주에서 처형되었다.

보부상

봇짐 장수외 등짐 장수를 합쳐서 이르는 말로, 봇짐 장수는 귀금속이나 세공품 같은 사치품을 보자기에 싸 들고 다니면서 파는 상인이고, 등짐 장수는 값싼 일용 잡화를 지게에 지고 다니면서 파는 상인이다. 보부상은 규율이 엄한 단체를 만들어 활동했다. 나라에서는 보부상들이 안전하게 장사를 할 수 있도록 권리를 지켜 주는 대신, 외적의 침입을 막거나 반란을 억누르는 데 이용하곤 했다.

손화중 (1861~1895)

동학 농민군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1881년 동학에 들어가, 얼마 뒤 전라도 무장의 접주가 되었다. 1894년, 전봉준, 김개남 등과 함께 동학 농민군을 일으켜 활약하다가, 전주 화약 이후 전라도 나주 지방을 중심으로 집강소를 이끌었다. 1895년 1월 6일 전라도 흥덕에서 붙잡혀, 4월 23일 전봉준과 함께 서울에서 처형되었다.

집강소

전주 화약 이후, 농민군이 전라도 각 고을에 설치했던 자치 기관이다. 전주의 총본부를 따로 두고, 전라도 각 고을에 집강소를 두어, 전주 화약 때 전봉준과 정부 사이에 맺었던 사항을 실천했다. 우두머리인 집강 아래 치안, 성찰, 징세 등의 일을 맡은 별감들이 모여 그 고을의 여러 가지 일들을 처리하였다.

 

전봉준 생가 주소: 전북 고창군 고창읍 죽림리 63

전봉준과 동학 농민군의 이야기는 부패한 지배층에 대한 저항과 민중의 권리를 위한 투쟁으로 조선 후기 역사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비록 그들이 꿈꾸던 세상은 이루지 못했지만, 전봉준을 비롯한 동학 지도자들의 희생과 열망은 이후 의병 운동과 독립 운동으로 이어져 한국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동학 농민 운동은 단순한 반란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이루기 위한 민중의 외침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전봉준과 동학 농민군의 이야기는 여전히 정의와 자유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며, 그들이 남긴 희생과 열정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깨닫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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